"나는 신(神)이 아픈 날 태어났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 세사르 바예호
<하얀 돌 위의 검은 돌>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파리에서 죽겠다.
그날이 어느 날인가는 이미 알고 있다.
파리에서 죽으리라, 피하지는 않겠다.
어쩌면 오늘 같은 가을날 목요일.
오늘 같은 목요일 오후. 이 시를 쓰는
이 목요일, 상박골이 아파오고 있는데,
내가 걸어온 이 길에서 오늘만큼 내가
혼자라는 것을 느낀 적이 없으니 말이다.
세사르 바예호는 죽었다. 바예호가 아무 짓도
안 했는데도 모두들 바예호를 때린다.
몽둥이로 얼마나 두두려대던지, 게다가,
동아줄로 얼마나 세게 옭아매던지,
목요일, 상박골 뼈, 고독, 비, 길……
이 모두가 몽둥이찜질의 증인이다.
그리고 세사르 바예호는 파리에서 비가 내리던 금요일(페루는 목요일) 자신의 시처럼 세상을 떠났다.
희망은'잘될꺼야, 뭐든지 할 수 있어' 같은 천진한 낙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깊이 고통받아 괴로워워 슬퍼하던 사람의 생각과 글에서 나온다.
2018년 9월의 서가명강은 ‘라틴아메리카의 대표 시인’을 주재로 진행된다.
3주차는 페루의 시인 세사르 바예호(1892~1938)이다.
바예호는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와 비교된다. 같은 중남미 출신이며, 같은 시대 파리에서 살았지만, 이 두 시인의 삶은 매우 달랐다. 네루다는 부유하고 낙천적이었으며 정계에까지 진출한 반면 바예호는 가난하고 비관적인 삶을 살아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참고로 <서가명강>은 21세기북스에서 주관하는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이다.
바예호는 살아서 2권의 시집을, 사후에 출간된 1권으로 단 3권의 시집만 있지만,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페루 고산지대의 특이한 환경 속에서 살면서 고통 한가운데서 휴머니즘을 찾을 수 있는 시를 남겼다.
그레서 바예호의 시에는 ‘죽음’, ‘고통’, ‘검은’ 등의 시어가 많이 등장한다. 체게바라의 녹색 노트가 발견되었을 때 바예호의 시가 가장 많이 필사되어 있었다고 하니, 그의 시는 어렵고 힘든 삶을 사는 이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었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지만, 가족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녹아 있는 시가 <형 미겔에게>에 남아 있다.
<형 미겔에게> - 형의 죽음에 부쳐
형! 오늘 난 툇마루에 앉아 있어.
형이 여기 없으니까 너무 그리워.
이맘때면 장난을 쳤던 게 생각 나. 엄마는
우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지. “아이구, 얘들아……”
저녁 기도 전이면
늘 술래잡기를 했듯이
지금은 내가 숨을 차례야. 형이 나를 찾지 못해야 하는데.
대청 마루, 현관, 통로.
그 다음에는 형이 숨고, 나는 형을 찾지 못해야 해.
그 술래잡기에서 우리가
울었던 일 생각나?
형! 8월 어느 날 밤.
형은 새벽녘에 숨었어.
그런데, 웃으며 숨는 대신 시무룩했었지.
가버린 시절 그 오후의 형의 쌍둥이는
지금 형을 못 찾아 마음이 시무룩해졌어. 벌써
어둠이 영혼에 고이는걸.
형! 너무 늦게까지 숨어 있으면 안 돼.
알았지? 엄마가 걱정하시거든.
구글링하여 찾아본 원시는 이렇다.
<A mi hermano Miguel>
In memoriam
Hermano, hoy estoy en el poyo de la casa,
donde nos haces una falta sin fondo!
Me acuerdo que jugábamos esta hora, y que mamá
nos acariciaba: «Pero, hijos...».
Ahora yo me escondo,
como antes, todas estas oraciones
vespertinas, y espero que tú no des conmigo.
Por la sala, el zaguán, los corredores.
Después, te ocultas tú, y yo no doy contigo.
Me acuerdo que nos hacíamos llorar,
hermano, en aquel juego.
Miguel, tú te escondiste
una noche de agosto, al alborear;
pero, en vez de ocultarte riendo, estabas triste...
Y tu gemelo corazón de esas tardes
extintas se ha aburrido de no encontrarte. Y ya
cae sombra en el alma.
Oye, hermano, no tardes
en salir. Bueno? Puede inquietarse mamá.
마치면서...
이번 강연의 라틴아메리카 시인들 중에서 특히 세사르 바예호의 시는 독특하다.
날카롭게 아파오지만 시원하다.
살다보면 누구나 진실이나 진리, 가치, 영혼 따위는 아무 소용 없다고 느끼는 고통이나 괴로운 시절이 있다. ‘내가 살아있어야 할 중요한 이유가 하나라도 있을까?’라는 물음이 생긴다면, 세사르 바예호 시를 읽어봐야 할 일이다.
깊이 슬퍼하는 시인의 시를 통하여 살아 있고자 하는 열망이 생길 수도 있으니...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다른 가난한 이가 이 커피를 마시련만”이라며 자신이 태어난 사실을 용서받고자 했던 인간, 세사르 바예호를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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